영성(Spirituality)이란 인간의 삶의 가장 높고 본질적인 부분이며, 인간의 역동성을 통합하려는 고귀하고 높고 선한 것을 추구하는 삶의 실제이다.
영성은 진정한 자기초월을 향하는 인간의 우주적-하늘적 품성, 영혼의 품성, 신성한 품성, 그리스도의 성,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품성으로 이해되기도 한다.
영적 감성은 초월성, 신성 안에 깨어나 있는 상태에서 생활 속에서의 느낌을 적절하게 표현해내는 능력이며, 영성과 감성은 우리 가슴 속에서 만나 그 결과로 사랑과 진실 속에서 살아가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오래 떠나 있던 사진에 다시 빠져든 후 수년 간 개념적인 풍경, 초월적인 풍경 등을 탐미하였다. 어느 날 우중 촬영 중에 잠시 비가 그친 사이 바위에 고인 물 표면으로 먹구름 뒤에 숨어있던 태양이 나타났다.
그 순간 나는 그분의 눈을 보았다. 나는 미친듯이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수만 년 동안 묵묵히 있는 바위의 장중함. 그 주위로 흐르는 물살이 바위를 깎아 내리며 형성한 부드러운 곡선의 바위 언덕들.그 바위 윗면의 움푹한 곳에 고인 물. 그 물에 비친 태양. 창조주의 눈, 그리고 그 속에 일어나는 생명의 잉태!
성인과 수도자들의 장소는 시공을 초월하는 카이로스 공간이다.
그들의 거처와 그들이 관상하며 기도하던 곳, 그리고 묵상하며 바라보던 자연 속 피조물을 우리는 사진 속에서 공유하며 그들과 같은 생각 속에서 유영할 수 있다.
나아가 미래의 모습, 예언된 모습, 상상 속의 모습도 볼 수 있다. 즉 이 사진들은 중세와 현재 사이의 ‘카이로스’의 범주에 속하는 셈이다.
렌즈를 통해 성인의 흔적, 성인과 관련된 풍경의 전개를 포착하고 셔터를 누름으로써 프란치스코 성인께서 살아 계시던 중세 시대의 믿음, 성인의 영성과 행동을 담으려 했다.
이 사진들 속에는 성인께서 찬미하던 하느님과 피조물의 신비와 고요의 신비, 성인의 오상의
흔적들이 묻어 있다.
모든 존재는 혼자가 아니며 시간과 공간을 함께 품고 살아간다.
고요는 ‘시공합일’이며 그 속에서 사물과 사물이 서로의 영혼을 느낄 수 있다.
지난 해 나의 화두는 ‘영원’, ‘불멸’, ‘변치 않음’ 이었다. 너무 어려웠다.
예수님의 시신을 감쌌다는 침향도 찍어 보았고, 국내외 트레킹 내내, 또 사막에서도, 자나 깨나 ‘영원’, ‘불멸’이란 말을 사유하며 다녔다.
결국 아리스토텔레스의 영원에 대한 표현에서실마리가 풀리기 시작했다.
영원한 실체는 존재하는가?
아리스토텔레스는 영원한 것의 예로 운동과 시간을 언급하였고, 제일 천계(The first heavenlyworld), 즉 우주를 구성하는 가장 바깥쪽의 구가 실제로 존재하는 영원한 실체라고 하였다.
우주적 영원성, 혹은 불변성은 빛을 발산하는 별들에서 볼 수 있고, 한 해의 마지막은 시작도 끝도 아니며 새 해로 계속 진행되는 시간의 일부이다.
결국 우주적 영원성을 빛을 발하는 구형의 발광체와 평면이 부딪치는 형식으로 보여준 후, 머나 먼 별 사진과 함께 그 뒤에 흐르는 우주적 존재들을 표현하였고, 마지막으로 반투명한 천연석들을 늘어 놓아 가상의 우주 천계를 평면으로 설정한 후 그 속에초월적 존재가 인간을 사랑으로 보호하는 모습으로 연출하였다.